군산에서 숙녀복 매장을 하시는 우리 부모님은
서울 본사의 모임이나 기타 업무상의 일로 종종
서울에 오신다. 덕분에 일년에 두어 번 집에 내
려가는 이 불쌍한 고시생도 꽤나 주기적으로 방
청소와 과일과 500원짜리 동전 모음과
고기, 가
족의 사랑 등을 수혈받는다(사실 그래서 이 생활
을 버틸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).
며칠 전에도 두 분이 올라오셨었다. 냉장고에 고
기 채워주시고, 내가 딱 필요했지만 말씀 안드렸던
물건들(이를테면 세제나 치약, 신발장 등)을 어찌
아셨는지 마련해주시고, 과일을 하사해 주시고 하
니 너무 감사했다. 하지만 한가지, 엄마와 내가 합
의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.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뜨
거운 감자, 그건 집청소에 대한 철학 차이이다.
자취생활 10년이 되어가는 아들놈을 아직도 못믿
으시는 우리 엄마는 언제나 내가 꾸며놓은 기적의
인테리어에 불만이 많으시다. 거기다 내가 해 놓은
청소의 헛점을 어찌 그리 잘 집어내시는지. 난 오랜
만에 보는 엄마가, 거기다 허리도 않좋으신 양반이
아들 집에서까지 청소나 설겆이 등을 한다고 고생
하는 게 참 싫다. 그냥 커피나 드시고 쉬다 가라고
역정을 내지만, 언제나 잠시 방심한 새에 모든걸 뚝
딱 뚝딱, 반짝거리게 하신다. 그리고 모든걸 바꿔놓
으신다. 그날도 아버지랑 잠시 심부름 처리하고 다
녀온 사이에, 엄마는 내가 고심해서 이룩해 낸 기적
의 부엌 인테리어 - 세탁기 위에 전자레인지, 그 위에
밥솥과 커피포트, 토스트기를 모두 올려놓은 공간창출
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- 를 모두 리셋해놓으셨다.
"마미이~~~!!!"
"왜 아들."
"부엌 이거 아들이 일주일 고민해서 맞춰놓은 거란
말입니다. 왜 이걸 상의도 없이...(부들부들)"
"...아들. 너 이렇게 해 놓고 밥지어먹은 적 있어?"
"...아니"
"밥솥이 니 눈높이에 있다. 너 이걸로 밥하면 밥떠
먹기 힘들어. 키나 크면 또 몰라...(프스스)"
"엄마 미워! 암것도 모르면서!!" (이 무슨 사춘기 청
소년스러운 대사냐...)
결국 엄마 말이 맞다는 걸 알게되었지만, 왠지 억
울하다. 키가 180이 안되는 건 엄마 닳아서 그렇잖아
...
우리 아버지, 요즘 싸이클에 매진하신다. 엄마한테 듣
기론 하루에 몇십키로씩 달리신다고 한다. 가끔은 도경
계를 넘어가는 라이딩도 즐기신다고(참고로 군산은 전
라북도의 북쪽 끝이다). 잠시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심
부름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. 아버지는 차를 주차해 놓
으신채 기다리셨다. 당신은 나이키의 얇고 몸에 딱 붙
는 - 땀배출이 잘 되는 소재로 만들어진 - 반팔 상의를
입고 계셨다. 차에 비뚜름하게 기대어 선 그 분의 모습
은...
우리 아빠 맞아? 안성기 아냐? 아니 환갑이 다 되신 양
반이 팔뚝에 왠 잔근육이... 이거 잘못하면 반항도 못하
고 맞아죽겠구만. 근데 자전거 탄다고 상체도 저렇게 좋
아지나? 다리 근육은 더 장난 아닐거 아냐(그러니까 킥은
펀치보다 더 강할거 아냐). 이거 살을 주체못하는 아들
놈이 얼마나 한심하실까... 돌아오는 길은 둘 다 평소보다 더 말이 없었다.
"야."
"(움찔)네."
"...살빼라. 좋은 말로 할때. 추석때까지."
"...네."
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. 살아오면서 가
장 기뻤던 일도, 가장 슬펐던 일도 모두 가족이란
이름표가 붙는 일들이었다.